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프레임에 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사진가들을 보면 백이면 백 대부분이 부지런하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깨어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일출을 촬영하고, 새벽에만 만날 수 있는 곤충들을 프레임에 담는다. 또 남들은 무겁다며 렌즈 하나로 산을 오르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무거운 바디와 망원렌즈를 어깨에 이고 산에 올라 다른 이들이 포착할 수 없었던 산의 중후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다. 식상하고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닌 특별하고 느낌이 있는 사진을 위해서는 이처럼 직접 발로 뛰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새로운 것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세계 어디든지 직접 발로 뛰는 사진가가 있다. 바로 오지전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하선이다. 박하선은 20대를 바다위에서 항해사로 보냈다.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 좋아서 독학으로 카메라를 배웠고 배가 정박한 곳이면 어디든 사진에 담았다. 그는 결국 사진에 올인하기 위해서 배에서 내렸고, 2001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사진콘테스트인 ‘월드 프레스 포토’의 일상생활(daily life stories)부문에 선정됐다. 티벳 사람들의 장례풍습을 다룬 ‘천장’시리즈로 수상을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보여주고 싶다’기 보다 ‘내가 보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 박하선의 사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쉽다고 생각하면 쉽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 사진이다. 카메라의 발달로 사진 자체의 기술적인 면은 굉장히 편리해졌지만 좋은 사진을 얻는것은 여전히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자신이 사진을 왜 찍는가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피사체에 접근한다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 피사체에 좀 더 다가가라.
사진을 찍을 때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피사체에 가깝게 접근해야한다. 피사체에 좀 더 가까이 접근했을 때 피사체와 교감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메시지가 있는 사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진보다 메시지가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사진에 메시지를 담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대상과의 거리를 얼마나 줄이는 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서 촬영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물을 보고는 피사체와 떨어져 있는 모습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피사체에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을까? 먼저 촬영자는 피사체에 거리를 두고 외곽에서부터 천천히 접근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피사체의 주변 환경까지 프레임에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과감히 접근해서 광각렌즈로 촬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광각이 가지는 왜곡을 이용하여 인물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해서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표현 해보자. 훨씬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Full Frame 바디에선 24mm 이하의 광각렌즈를 사용하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가 어려운 망원렌즈 보다는 편의성이 높은 단렌즈나 줌렌즈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무거운 카메라 바디, 렌즈, 그리고 트라이포드까지 가지고 다니는 사진가들에게 망원렌즈는 분명 부담스러운 장비다. 하지만 망원렌즈를 쓰는 습관을 가지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우리 눈으로 관찰했을 때 놓치기 쉬운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낼 수 있다. 망원렌즈대신 광각으로 사진을 촬영하게 되면 지나치게 많은 부분이 프레임에 드러난다. 사진이 모든 것을 설명하면 읽는 이들이 할 일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사진이 재미없어지기 쉽다. 비록 최근엔 광각렌즈라도 조리개값이 작기 때문에 망원의 효과를 어느정도 볼 수가 있긴 하지만 인물 사진에서 광각은 망원의 아웃포커싱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반면에 망원렌즈를 사용하게 되면 한 프레임 안에 많은 것을 함축할 수가 있다. 특히 산악사진의 경우 망원 렌즈로 촬영하게 되면 프레임에 힘이 실리고, 사진이 웅장하며 중후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 오지를 탐험하다.
그는 사진에 있어서만큼은 말 안 듣는 청개구리다. 촬영하지 말라는 곳에서는 꼭 사진 찍고,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는 꼭 들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토종 청개구리다. 그는 누구나가 꺼리는 곳이야 말로 ‘진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카메라를 손에 쥔지 어느덧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이트 (http:://www.photodragon.com)를 통해 함께 오지를 여행하고 그 모습을 프레임에 담을 동료들을 모집한다. 그의 사이트에서는 그가 여행했던 나라들의 여행정보는 물론 박하선의 포토에세이도 함께 볼 수 있다. 아래 그의 포토에세이 한편을 소개할까 한다.
박하선의 포토에세이
스리랑카(SRI LANKA)-문화삼각지대(CULTURAL TRIANGLE)
‘인도양이 진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도 대륙의 눈물’이라고도 불리 우는 섬나라 ‘스리랑카’. 이곳에 기원전 236년에 인도 아쇼카의 아들 ‘마힌다’에 의해 불교가 전해지면서 그 찬란한 문화가 피워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도 그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의 문화유산 들이 도처에서 지난날을 그립게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누와라(캔디)’를 잇는 일대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유적군이 몰려있어 이 지역을 일컬어 ‘문화삼각지대’라 부른다.
아누라다푸라. 약 2,500년 전에 이곳은 스리랑카 최대의 도시였다. 그 문명을 상징이라도 하듯 거리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탑은 하늘을 향해 장대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고, 수많은 조각은 어느 것이나 부처의 미소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곳에서 기반을 다진 불교, 즉 우리가 흔히 ‘소승불교’라 말하는 상좌부 불교는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등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남인도에서 쳐들어온 침입자와의 거듭된 전쟁 끝에 1,400여 년에 걸친 영화의 막을 내리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도처에서 지난날의 영광을 느껴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이 아누라다푸라 유적지를 둘러보지 않고서는 스리랑카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 아누라다푸라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성지 ‘미힌탈레’가 있다. 1934년, 정글 속에서 잠자고 있던 유적군이 발굴된 이래 스리랑카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의 하나로 여겨지며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석양녘에기도하기 위해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산정의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서서 광활하게 펼쳐지는 불국의 땅을 바라볼 때의 기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한다.
10세기 말에서 11세기에 걸쳐 남인도의 쵸라왕조가 대군을 보내 신할라 왕조의 수도인 아누라다푸라를 정복하게 되자 이 신할라 왕조는 어쩔 수 없이 수도를 ‘폴론나루와’로 옮겼다. 이때부터 폴론나루와 시대가 열리고 타이나 미얀마 등에서 승려들이 찾아올 만큼 불교도시로 번영을 누려 스리랑카 불교 문화의 전성기를 맞았다. 정글 속 곳곳에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는 왕궁이나 거대한 불탑, 불상들이 그 시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폴론나루와 시대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13세기 후반에 다시 인도 쵸라왕조의 침략을 받아 이 섬의 중앙부로 쫓겨가게 되고, 폴론나루와의 영광은 점차 페허의 도시가 되어 정글속에 묻히게 되었다.
이 문화삼각지대에서 가장 독특한 곳은 ‘시기리아’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의 요새 ‘시기리아 록’이다. 주위의 숲과 상당히 대조적인 적갈색의 이 바위산은 높이가 195미터로 하늘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솟아있는 기막힌 모양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바위산 꼭대기에 5세기 중엽에 화려한 왕궁을 짓고 살았던 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억지로 왕좌에 오른 ‘카샤파’ 왕자는 동생 ‘목갈라하나’의 보복이 두려워 이 요새에 성을 쌓았다. 경사가 급한 바위를 사자 발톱 모양의 돌계단을 거쳐 거의 기다시피 하며 산 꼭대기에 올라서면 숱한 의문에 싸여있을 뿐인 궁궐의 흔적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담불라’의 석굴 사원 역시 갑자기 우뚝 솟은 듯한 거대한 적갈색의 바위산에 있다. 이 절은 기원전 1세기에 신할라 왕인 발라감 바후 왕에 의해서 지어졌다. 왕은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서 타밀 군의 침략에 밀려 이곳으로 피신한 뒤 다시 왕권 회복을 꾀했다고 해서 감사의 뜻을 모아 이 사원을 짓게 했다고 한다. 벽화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바래갔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극채색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굴에 들어가면 그것들이 놀라운 박력으로 다가와 신성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불교 설화를 그린 수많은 벽화 가운데는 신할라인과 타밀인 사이의 전쟁을 그린 것도 있다.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이 태고적부터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문화삼각지대의 종점이며, 스리랑카 마지막 왕조의 도읍이라 할 수 있는 ‘누와라’는 ‘도시’라는 뜻인데 지금은 ‘캔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 배어있는 곳이다. 19세기에 이 곳 누와라가 영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으면서 신할라인들은 식민지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스리랑카 지배를 시작한 영국은 스리랑카의 종교나 전통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특히 자신들의 언어대로 지명을 많이 바꾸었는데 영국 식민지 시절 전까지 수도였던 누와라를 캔디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누와라에는 식민지 세월을 당당하게 이겨낸 ‘달라다말리가와’라는 사원이 있다. 일명 ‘불치사’라 불리는 이 절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다. 4세기에 인도 오릿사의 칼링가로부터 전해진 석가모니의 치아는 스리랑카의 왕조가
도읍을 바꿀 때마다 함께 옮겨졌다. 불치를 유달리 귀하게 생각하는 스리랑카인들은 이 곳 참배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스리랑카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이는 여정에 따라야 하는 곳이다. 이 여정은 스스로의 발견을 위한 여행이고 삶을 찾는 길이다. 곳곳에 스며 있는 상좌부 불교의 자취. 그리고 가냘퍼 보이지만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꿋꿋이 지켜온 문화. 그 모든 문화의 내음을 듬뿍 담아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고 있다. 끝.
스리랑카 여행 정보(Travel Information) TRIANGLE
1. 비자
2002년 현재, 한국 여행객에게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치 않다.
2. 항공
1) 서울-싱가폴-콜롬보 구간을 싱가폴 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2) 서울-방콕-콜롬보 구간을 타이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3) 서울-홍콩-콜롬보 구간을 케세이패식픽 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4) 방콕- 콜롬보, 일본(후쿠오카)-콜롬보 구간을 에어랑카 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3. 통화와 시차
스리랑카의 통화 단위는 ‘루피(Rs)’이며,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3시간 30분 늦다.
4. 콜롬보 공항에서 시내로
콜롬보 국제공항은 콜롬보의 북쪽 32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공항로비 앞에서 시내까지 버스와 택시가 운행하고 있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열차도 있다. 하지만, 초행길에는 택시 를 이용하는 게 좋은데,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5. 숙박
스리랑카의 전반적인 물가는 저렴한 편이지만, 콜롬보 시내에서 초행길인 외국인 여행자 가 묵기에 적합한 저렴한 숙소를 찾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그것도 밤에 도착하면 더욱 그렇다. 그 중의 하나 ‘Hotel Empress'’가 추천할만 하다. 한국인이 경영한 적이 있어 한국음식점도 있으며, 에어콘이 있는 방 하나에 20US$ 정도다. 좀 더 비싸기는 해도 그럴싸한 곳을 찾는다면, 시내 중심에 있는 일류 호텔 보다는 남쪽 외곽지역 바닷가에 있는 전통이 있는 호텔 ‘Mt. Lavinia'를 추천한다. 문화 삼각지대(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 와, 캔디)에는 곳곳에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하면서 쓸만한 숙소들이 많아 별 불편이 없다. 10-15 달러면 에어콘이 있는 호텔에 투숙. ‘폴론 나루와’에서는 ‘GAJABHA G.H.'에 여행자들이 많이 묵고 있다.
6. 교통
콜롬보에서 ‘아누라다푸라’ 까지는 버스와 열차가 있다. 에어콘 버스도 좋지만 주간에는 열차를 추천하고 싶다. 약 5시간이 걸리는데,
2등칸도 있지만 주간에는 3등칸이 더 매력 적이다. 현지민들과 뒤섞여 대화를 나누면서 주변 시골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절대 지루하지 않게 된다. ‘아누라다푸라’에서 ‘폴론나루와’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이 걸리고, ‘폴론나루와’에서 ‘시기 리아’에 갈 때는 ‘담불라’라 ‘캔디’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도중 ‘이나무라’에서 내려, 버 스를 갈아타야 한다. 하지만 버스가 보통 만원이어서 타기가 쉽지 않다. 이때는 오토릭셔 를 불러 타고 가는 게 한 방법이다. 3달러 정도다. ‘아누라다푸라’의 유적지는 넓기 때문에 걸어다니며 구경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그래서 오토릭셔 또는 택시를 하루에 10달려 이내에 랜트 할 수 있다.
7. 입장료
문화 삼각지대의 유적들은 유네스코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입장료가 상 당히 비싸다. 아누라다푸라-15달러, 폴론나루와-15달러, 시기리아 록-15달러(변경되었을 수 있음). 단, 석굴 벽화가 있는 ‘담불라’와 ‘캔디’, ‘미힌탈레’ 같은 곳은 이보다 저렴하다.
8. 주의사항
1).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자주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모기가 많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걸 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 현지민들은 거의가 순진하고 착하지만, 이따금 소매치기나 사기꾼들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3). 드물기는 하지만, 콜롬보 시내는 물론 지방에서도 이따금 타밀 반군들의 폭탄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4). 모든 불교 유적은 이곳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성지이다.
이 신성한 기 도 장소를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장(피부를 심하게 노출시키는 복장은 삼가에 주의하고, 성지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 다큐멘터리 작가의 사명.
사진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 그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 찍는 방법을 체득할 때 교수님들과 전문가들이 거들어 줄 수는 있지만 100퍼센트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많이 경험하는 것이 좋은 사진을 위한 지름길이다. 그는 진정한 노력파다. 모든 사람이 꺼리는 곳, 사진을 찍기엔 위험한 곳이 그에겐 최고의 촬영장소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사실을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기록하는 것에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기 위해서는 두 눈 외에 또 하나의 눈을 가져야 한다. 바로 왜곡 없이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눈을 가지고 똑같은 상황을 바라본다.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다큐멘터리 작가의 명분이고 사명이다. 보이지 않는 것 까지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다큐멘터리 작가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많고 못 찍은 것이 많을 텐데 왜 오지로만 돌아다니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 전체가 우리 것" 이라며 "글로벌시대에는 좁은 한반도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찾을 게 아니라 지구 전체를 우리의 무대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들을 익숙하게 바라보는 박하선은 계속해서 앞으로도 오지를 다니면서 새로운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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